신구약 중간기 문헌들에 관하여

외경, 위경, 사해 두루마리

유대교의 중요한 문헌들은 히브리 성경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히브리 성경은 토라(율법), 느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24권의 책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표준 역에서는 39권으로 나뉩니다. 이러한 책들은 신성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며 ‘정경’으로 인정받아, ‘부정한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만큼 신성한 책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신구약 중간기에는 히브리 성경 외에도 다양한 문서들이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외경, 위경, 사해 두루마리 사본의 형성과 내용, 그리고 이들이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외경의 형성과 내용

신구약 중간기에는 유대인들이 히브리 성경 외에도 다양한 문서를 남겼습니다. 이 문서들은 외경, 위경, 사해 두루마리 사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경(Apocrypha)은 히브리어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책들로, ‘감추어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가짜’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경은 본래의 히브리어 성경 외에 첨가된 자료들이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부르며, 가톨릭에서는 제2 경전으로 부릅니다. 개신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만, 가톨릭은 구약에 7권의 외경을 더 해 총 73권을 사용합니다. 외경의 형성 과정은 70인역(LXX) 성경의 번역과 관련이 깊습니다.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은 처음에는 모세오경만 번역되었으나, 점차 히브리어 성경 전체와 추가적인 문서들이 번역되었습니다. B.C. 50년경까지 70인역 성경은 54권으로 늘어났고, 헬라 제국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성경보다 헬라어 성경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A.D. 90년 얌니야 회의에서 아가서와 전도서를 포함한 구약 성경은 39권으로 확정되었고, 헬라어로 된 15권의 후기 문서는 정경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얌니야 회의를 통해 정경에서 제외된 15권의 외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에스드라 (The First Book of Esdras), 제이 에스드라 (The Second Book of Esdras), 토비트 (Tobit), 유딧 (Judith), 에스더 부록 (The Additions to the Book of Esther), 지혜서 (The Wisdom of Solomon), 집회서 (Ecclesiasticus, or the Wisdom of Jesus the Son of Sirach), 바룩 (Baruch), 예레미야의 편지 (The Letter of Jeremiah),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The Prayer of Azariah and the Song of the Three Young Men), 수산나 (Susanna), 벨과 용 (Bel and the Dragon), 므낫세의 기도 (The Prayer of Manasseh), 마카베오 상 (The First Book of Maccabees), 마카베오 하 (The Second Book of Maccabees). 그러나 헬라 문화권에 속한 로마 교회와 유럽의 교회들은 얌니야 회의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A.D. 390년 로마 교회는 70인역을 라틴어로 번역했으며, 히에로니무스(제롬)는 후기 문서들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1546년 트리엔트 종교회의에서 가톨릭교회는 후기 11문서를 제2경전으로 승격시켜 구약 성경에 포함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성경은 구약 46권,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개신교는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할 때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외경을 제외했습니다. 이로 인해 개신교 구약 성경은 39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2. 위경의 형성과 내용

위경(Pseudepigrapha)은 ‘거짓 이름으로 기록된’이라는 뜻으로, 외경보다 범위가 훨씬 넓습니다. 위경은 예수 탄생 이전 몇 세기 동안, 즉 신구약 중간기와 A.D. 1세기에 기록된 문서들을 포함합니다. 위경은 크게 팔레스타인에서 기원한 것과 헬라에서 기원한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기원한 위경들은 제 1 에녹서 (B.C. 164년경), 희년서 (B.C. 150년경), 12족장의 유언서 (B.C. 140~110년경), 솔로몬의 시편 (B.C. 50년경), 욥의 유언서 (B.C. 1세기), 모세의 승천서 (A.D. 7~28년), 예언자들의 생애 (A.D. 1세기), 이사야 순교사 (A.D. 1~50년), 아브라함 유언 (A.D. 1~50년), 아브라함 묵시록 (A.D. 70~100년), 제2 바룩서 혹은 바룩의 묵시록 (A.D. 50~100년), 아담과 이브의 생활 혹은 모세의 묵시록 (A.D. 80~100년)입니다. 그리고 헬라에서 기원한 위경들은 무녀의 신탁서: 3권 (B.C. 150~120년경), 4권 (A.D. 89년경), 5권 (A.D. 130년 이전), 제3 마카비서 (B.C. 1세기 말경), 제4 마카비서 (B.C. 1세기 말경 혹은 A.D. 1세기 초), 제2 에녹서 혹은 에녹 비밀서 (A.D. 1~50년), 제3 바룩서 (A.D. 100~175년)입니다.

3. 사해 두루마리 사본의 발견과 내용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쿰란 사본이라고도 불리며, 1947년 사해 인근의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입니다. 이 문서들은 가죽에 기록된 것이 대부분이며, 가장 긴 것은 8.6미터에 이릅니다.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B.C. 200년부터 A.D. 70년까지의 문서들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발견되었습니다. 1951년 무라바아트에서 로마 통치 기간의 문서들이 발견되었으며, 1952년에는 키르벳 미르드에서 헬라어, 히브리어, 팔레스타인 아람어로 된 문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1960년과 1961년에는 엔게디와 나할 헤버에서 문서들이 발견되었고, 1967년에는 The Temple Scroll이 발견되었습니다.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쿰란 공동체의 생활과 신앙, 묵시문학적인 사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들은 유대교의 역사와 신앙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 사회와 종교 생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결론

신구약 중간기 문헌들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외경, 위경,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각각 독특한 역사적, 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 문헌을 통해 우리는 당시 유대 사회와 종교의 복잡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 문헌들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신앙과 전통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입니다. 외경, 위경,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각기 다른 시각과 내용을 제공하며, 이들을 통해 우리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역사적, 신학적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들은 과거의 신앙과 전통을 현대에 전달하며, 신학적 연구와 종교적 탐구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오늘날에도 이 문헌들은 학문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으로 남아 있으며,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경 형성과 신앙 발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문서들은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의 신앙과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 문헌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뿌리를 탐구하는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길잡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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